[프리다 칼로 레플리카전] 가기 전에 디에고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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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여행을 떠나기 전, 디에고 전시를 보고 썼던 이전의 기록이다.

2025년 현재, [프리다칼로 레플리카 전]이 한창이다.

아, 가고 싶다. 나의 프리다:).

그때는 둘이었는데 지금은 넷이다.  엄마가 좋아하는 그녀를 소개시켜줄까???

 

책으로 먼저 접해서 깜짝 놀라지 않게 해주는 게 좋겠지?

 

 

기간
2024.12.13.~
2025.03.16.
장소
성남큐브미술관

 

……..

프리다 칼로를 알게 된 것은, 이 한 장의 사진 덕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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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초반 어디서 이 그림을 보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이 그림을 보고 처음에는 무서웠고 그 다음에는 왠지,, 슬펐다. 

그리고

남미여행을 꿈꿀 때, 멕시코에 가면 꼭 프리다 칼로 박물관에 가겠다며 

“to do list”에 프리다 칼로 뮤지엄을 적었다.

그렇게 프리다 앓이를 시작할 쯤에

[프리다 칼로]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고 [디에고]의 전시회까지

열렸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디에고를 만나러 세종 미술관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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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이틀만 늦었어도 디에고를 한국에서 볼 수 없을 뻔 했다.

 

프리다 칼로를 마음 속으로 응원하는 한 사람으로,,

디에고 리베라가 참 밉다.. 

그러나 그의 인기는 대체휴가와 방학숙제와 맞물려 식을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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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줄을 통과하여, 드디어, 아무런 할인도 받지 못한 정가의 입장권을 손에 쥐었다.

아주 과감히,, 디에고 리베라의 엉덩이에 손을 얹어 보았다.

그리고 용기 있는 행동의 댓가로 “디에고 리베라 엽서”를 선물 받았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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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편견과 미움을 가지고 첫번째 전시장에 들어갔을 때,,,

나는 왜, 프리다 칼로가, 멕시코가 세계가,,

디베라를 그렇게 까지 사랑하고 존경 했는지 조금 알게 되었다.

 

“창조자로서 리베라는 항상 선두에 선 전위예술가적인 이미지가 강하지만,

스승으로부터 배운 전통이나 규율을 선호했으며

지식과 가능성의 마르지 않는 원천으로 과거의 명작들을 깊이 존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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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그림에 스티커를 붙이고 싶을 지경이었다 ㅋㅋㅋ

포스터를 2000원에 팔고 있었는데, 살까 말까 한참을 고민했지만,,,

짐은 그 어떤 것이든 더 이상 늘리면 안된다는 생각에 마음을 접었다,,,

디에고 하면 벽화 아니겠는가,, (정말 전시회에 푹 빠져서 사진이 없다;;;;;)

도슨트 시간에 어쩌다 살짝 걸려 설명을 들으며 벽화를 한참을 보았다.

디에고의 바램은, 오랜 식민지와 독재,

지독한 가난과 문맹으로 역사와 문화의 사각지대에 살 수 밖에 없었던

멕시코 국민들에게 벽화를 통해 그들의 역사와 현실을 직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는 정말로 문화 혁명가였다. 

멕시코에서는 꽤나 훌륭한 영웅이 듯 하다.

프리다칼로와 나란히 지폐의 주인공이기도 한 것을 보면,,,,

순간 혼란스럽다.

한 사람이라는 인격을 단지 윤리, 단지 도덕만으로 결론 짓기에는

도덕과 윤리가 한없이 작고 가볍고 가난해 보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사람이란 무엇인지 설명할 수 있겠느냐” 

철학이 보에티우스에게 물었던 질문을 나에게도 던져 보니,,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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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인생이 그리고 그 사람과 연결된 인생들이 실타래처럼 엉키고 설켜 

역사라는 것을 만들어 내고 있다,,

사실 우리 모두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그것이 아주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결코 쉽게 결론내릴 수 없는 매우 복잡한 삶을 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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뜬금 없이 해골인가 했다,, 그러나 디에고에게 있어 해골은 매우 심오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 해골 여인의 이름은 “카트리나”이다.

인디오의 피를 가지고 있으나 유럽인을 따라하는 당시의 부류들을  “허영심”이라고 지칭하고

해골 여인 카트리나로 그렸던 것이다. 

자기 자신이 되지 않고 세상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그것은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죽은 것이라는 의미겠지.

나 자신이 되지 않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나를 길들여 가는 

지금 우리의 오늘을 “삶”이라고 정의할 수 없을 것만 같아, 씁쓸하다.

아, 나는 해골아가씨 카트리나가 되고 싶지 않다, 정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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